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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한 부모와 그 자녀 간의 역설적 갈등,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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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3일 전

업데이트: 3일 전

작성: 2025-10-16 09:18

업데이트: 2025-10-16 10:19

지난 주일, 나는 매형이 되신 분의 장례(葬禮) 미사(Missa)에 참석하였다. 미사를 담당한 젊은 신부(神父)는 고인(故人) 되신 분과 친밀성이 있었는지, 고인과 자녀 간 신앙 문제로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을 소개하였다.

지극히 사적(私的)인 가족(家族) 간(間) 개인 個人) 사(史)인데 공개적 자리에서 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마 담당 신부가 공개해도 무방하고 또한 나름대로 교훈적 의미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공적(公的)인 장례 미사 시간에 소개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한 부모와 그 자녀 간의 역설적 갈등, 왜?


부모(父母)와 자식(子息) 간(間), 가장 가깝고 사랑스러운 관계이지만, 특히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어느 가정(家政)에서도 신앙과는 별개로 소통(疏通)이 원활하지 않은 경향이 있다.

그런데 간혹, 목회(牧會)자(者) 자녀와 소위 독실(獨室)한 천주교 또는 기독교인의 부모와 자녀 사이에 신앙(信仰)으로 인한 갈등(葛藤)을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그간 대한민국의 모든 가톨릭, 기독교 교회가 사람 눈에 보이는 성전(聖殿), 즉 건물과 전례(典禮) 그리고 봉사 중심으로 교회 생활 및 신앙생활을 해온 점이 아마 가장 큰 갈등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구약(舊約) 성경(聖經)에서도 여호와 하느님은 번제(燔祭) 보다 순종(順從)이 낫다고 하셨다. (사무엘 상 15장 22절)

사무엘 상 15장
22. 그러자 사무엘이 말하였다. "야훼께서, 당신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 번제나 친교(화목)제 바치는 것을 더 기뻐하실 것 같소? 순종하는 것이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낫고, 그분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염소의 기름기보다 낫소. (공동 번역))

이는 제사(祭祀)나 종교(宗敎)의식(儀式) 그 자체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順從)하는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대부분 부모 세대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것 자체가 성경 말씀에 집중하여 그 뜻을 헤아리고 그 뜻에 따라 실천하는데, 주력하는 것보다, 성전 건물을 중심으로 하는 즉 전례 또는 관례에만 치우쳐 온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막상 자기 자녀들과 생명과 빛의 진리 말씀을 가르치고 자기 삶을 통해 주님을 만나는 체험 또는 이를 증명하는 삶을 소홀히 하였다. 그리고 자기 자녀에게는 무조건 성당 또는 교회에서 드리는 미사 또는 예배 참석을 하라고 강요하다시피 한 것이 소위 독실한 신앙 가정의 단면(斷面)일 수 있다.


신약(新約) 성경(요한복음 2장 19~22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 성전(聖殿)을 허물고, 사흘이면, 새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 하였다.

요한복음 2장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21.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 그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서, 성경 말씀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표준 새 번역)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심으로써, 자신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진정한 성전(聖殿)이 됨을 말씀하신 것이다.
진정한 성전은 예수께서 하신 빛과 생명의 진리 말씀을 토대로 세워진 성전이며, 이 성전이 소위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자기 마음에 이러한 성전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가 죽은 후, 진리(眞理)의 영(靈)인 성령(聖靈)을 보내신다고 했다. 하나님은 성경(聖經) 말씀 안에 계시지만, 동시에 사람 눈으로 볼 수 없는 영(靈)으로도 계신다.

이 성령(聖靈)이 우리 안에 계셔야, 사람이 거듭나서 소위 하나님의 속성인 거룩함, 즉 이 세상의 가치와 구분됨을 회복할 수 있다.

그래야 진정 사는 삶을 누릴 수 있으며, 아무리 어려운 고난(苦難)이 닥쳐도 이를 극복(克服)하고 미래(未來)의 소망(所望)을 품을 수가 있다. 이는 생 노 병 사(生老病死)를 뛰어넘는 차원과 허무(虛無)함을 남기지 않는 삶을 의미할 수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俗談)이 있다. 어릴 때 몸에 밴 습관이나 행동은 늙을 때까지 고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이 말은 아무리 행동으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더라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격 또는 탐욕 등 나쁜 것은 노력하더라도 여간해서는 고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외형(外形)적인 신앙생활(信仰生活)보다, 내적(內的)으로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아는 지식(知識)을 습득한 후,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는 수준까지 다다랐을 때, 하나님 또는 주님의 성령(聖靈)이 사람 마음 안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그 사람을 바꾸어 나가고 거듭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가정에서 그 자녀를 양육하고 보살피며, 이러한 신앙생활의 모습을 보일 때, 그 자녀 또한 그 부모를 답습하며, 이러한 신앙(信仰)이 그 자손을 위한 진정한 유산(遺産)이 될 것이다.

2025. 10. 15 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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