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길

507주년 종교 개혁 주일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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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10-27

작성: 2024-10-27 19:44

오는 10월 27일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7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일부 역사 비평가들은 “16세기 종교개혁은 기독교의 교리적 개혁이었을 뿐,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개혁하는 데는 미치지 못했다”고 질타하였다. 교리적 개혁인 “오직 은총”(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은 명분만 남아 있고, 오히려 교회와 기독교인의 삶은 “오직 권력”(Sola Regnum), “오직 물질”(Sola Mammona), “오직 명예”(Sola Honoris)로 더 불타오르고 있다.

507주년 종교 개혁 주일을 생각해 본다


10월 31일은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당 문에 95개로 된 논제(Thesis)를 붙임으로 종교개혁의 불길을 지핀 기념일이다. 또한 칼뱅은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개혁 교회의 모토인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이 표현의 의미를 다시 부각하며 제네바 성시(聖時)화 운동에 근저가 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오늘날 한국 교회는 ‘교회는 결코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라는 그 기본 방향을 상실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다. (출처: 라이프 굿 타임즈, https://www.lifegoodtimes.com)


루터 시대는 인쇄술이 발달이 안되어서 가톨릭 신부 등 교회 지도자만 성경을 소유하고 접할 수 있었다. 일반 신자는 신부가 전하는 강론 미사를 통해서만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요한복음 1장
1. 태초(太初)에 말씀이 있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4. 그 안에 생명(生命)이 있었으니 이 생명(生命)은 사람들의 빛이라

말씀이 하나님인데 원천적으로 일반 신자(信者)는 직접 주님과 교제할 기회가 없었다. 이미 가톨릭교회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반석 위에 세운 교회가 아니라 종교의 한 형태이자 조직으로 전락한 셈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마 16: 18)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교회와 반석입니다. 교회라는 말이 성경에서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이 반석 위에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반석은 무엇입니까? 인간 베드로가 아니라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고백이 반석인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 16)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베드로의 믿음과 고백 위에 주님께서는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주님의 교회는 무너지지 않고 영원히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교회는 어떠한 제도나 건물이나 인물이나 종교 행위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믿음과 신앙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출처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505764, 최완석 목사, 국민일보, 2016. 4. 21)


16세기 교황 레오 10세에 이르러 교황청의 부채와 성 베드로 대성당의 보수와 개축을 위한 공사 비용 충당을 위해 면죄부(免罪符)를 판매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루터 신부를 중심으로 종교 개혁이 일어났다.

이후 약 5세기가 흘렀다. 이제는 교인마다 성경책을 들고 다니지만, 여전히 가톨릭교회는 신부의 미사 강론, 개신교는 목사의 설교를 통하여 대부분의 신자와 성도들은 성경 말씀을 전해 듣고 이에 의존하는 신앙생활(信仰生活)을 하고 있다.

내가 만나는 하나님은 그 말씀 안에 있거늘 언제까지 제삼자(者)를 통해서 내 영(靈)적 부모를 만나야 할까? 그런 상황에서 어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교회 시대 말기(末期)에 즈음하여 제2 종교개혁의 필요성보다 교인 개개인이 깨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신실한 주의 자녀들이 말씀의 등불을 들고 직접 주변의 어두움을 밝히고 돈, 명예 권력 등 헛된 것에 매인 사람들을 풀어주고, 어려운 사람을 돌보아 주는 사명을 실천하는 것이 주님의 뜻일 것이다. 이는 이미 구약 시대의 선지자(先知者)를 통해 선포(宣布)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사야 58장
6. 나의 기뻐하는 금식(禁食)은 흉악(凶惡)의 결박(結縛)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壓制) 당(當)하는 자(者)를 자유(自由)롭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한 굶주린 사람에게 너의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겠느냐?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 그에게 옷을 입혀 주는 것, 너의 골육(骨肉)을 피(避)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2024 10 27 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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